Frozen Moment
유리공예 아티스트 제프 짐머만(Jeff Zimmerman)은 오랜 시간 동안 유리를 소재로
한 다양한 작업을 해왔으면서도 여전히 그 소재의 무한한 매력에 완전히 매료되어
있다. 그가 유리라는 매개체로 표현하는 것은 흥미롭게도 물, 돌, 나무, 나뭇잎과
같은 자연의 구조, 현상과 같은 것이다. 이렇듯 호흡하는 것들이 순간적으로 내뿜는,
스치듯 지나가 버리는 아름다움을 포착하고 붙잡아두는 특별한 작업을 그는
‘얼어붙은 이야기’라고 명명한다. 유리로 얼려놓은 순간의 아름다움이라니,
그 어감에서 느껴지는 신비로운 감성은 그의 작품에서 역시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에디터 유인경, 자료협조 갤러리서미
지극히 아름다운 것을 볼 때 가슴 한 켠 슬픔이 함께 느껴지는 건 그것이 영원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활활 타오르던 장작이 온기를 잃어가며 마지막으
로 꽃피우는 불꽃의 찬란함, 빗방울이 창문에 떨어지며 만들어내는 찰나의 문양과
같은 순간적이고 완전한 작품들. 이처럼 자연이 만들어내는 우연과 같은 즉흥의
예술은 바로 그러한 이유로 더욱 간절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유리공예 아티스트
제프 짐머만은 이 같은 ‘우연적인 요소들’이 주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포착하는데
기민한 작가다. 그는 특히 생물의 구조와 자연 현상에 집중한다. 예를 들어 물 위
에 무언가 떨어졌을 때 물결로 퍼져나가는 초미립자의 움직임이라든지 우주의 빅
뱅이라든지 하는 아주 가깝고 혹은 비현실적일 정도로 먼 거리에서 일어나는 현
상. 나무와 나뭇잎, 돌과 같이 생명력을 지니는 존재의 구조와 움직임을 연구하고
실험하며 결과물로 나타낸다. 그리고 그가 이러한 비정형의 구조나 현상을 표현하
는 매개가 되는 것은 흥미롭게도 지극히 정형적인 속성을 가진 유리다.
“제가 특별히 유리에 관심이 있는 이유는, 유리라는 것이 뜨거워졌을 때 유동적인
성격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고체도 아니고 액체도 아닌 중간 상태인 거죠. 이런 유
리로 저는 순간을 포착한 어떤 모습을 만들어냅니다. 시간과 그 어떤 자연 현상,
그리고 고체와 액체의 중간, 움직이는 것과 정지된 것의 중간, 그 사이를 왔다 갔
다 하면서 오브제를 만들어내는 것에 집중하고 있죠.”
작은 사물에서 아이디어를 찾아내고 섬세한 작업 과정을 거쳐 점점 더 큰 규모의
환상적이고 유기적인 유리 조각을 만들어내는 그의 작업은, 분명 호기심과 탐구정
신은 물론 아티스트로서의 탁월한 재능이 필요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가 만든 신
비롭고 생기있는 비대칭의 조각들은, 전문가의 말을 빌리자면 ‘형식미에 대한 연
구와 이해를 거쳐 고전시대와 바로크 미술에 나타나는 장식성을 담은 독특하고
현대적인 감성’을 지닌다.
놀라운 점은 그가 유리공예나 디자인에 대해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수백 년 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작업되어 온 유리
공예 기술을, 그는 ‘산교육’을 통해 익혔다고 한다. 20여 년 동안 장인들을 찾아다
니며 그 기술을 몸소 체험하면서 얄팍한 이론 대신 땀과 영광의 상처들로 얼룩진
촌철살인의 지식을 습득했다는 것이다.
“저는 디자인을 처음부터 정확하게 구상해서 그림을 그리고 도면을 만들어서 하
기보다는, 작업하는 과정에서 발견되는 순간들이나 아이디어들을 즉흥적으로 차
용합니다. 그러고 보면 제 작품은 의도하지 않았던 의외성을 많이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죠.”
그의 말대로 그는 즉흥적이고 의외성을 띄는 순간적인 행위의 기록, 즉 그 자신이
표현하듯 ‘얼어붙은 이야기’를 통해 계속해서 세상과 소통해나갈 것이다. 다분히 실
험적인 동시에 그 자체로도 훌륭한 오브제가 되는 작품들을 끊임없이 양산해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