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활자.디자인

프로젝트: 04

 

글자꼴의 갈피를 잡다

 

글,디자인..

이용제 한글디자이너..

 

지난 글에서 새로 만들 글자꼴의 방향으로 3가지를 이야기했다. 그 방향성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최정호 명조체’와 한글 ‘해서체’의 균형과 비례를 바탕으로 붓이 만들어 내는 표정을 적극적으로 담는 활자를 디자인하는 것이다.

한글 본문용 활자의 기본처럼 여겨지는 명조체는 ‘최정호 명조체’를 바탕으로 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어서, 본문용 한글 활자를 디자인할 때최정호 명조체’를 뼈대로 삼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다. 그런데 최정호 명조체’와 함께 ‘해서체’의 뼈대를 밑바탕에 두는 이유는 ‘최정호 명조체’가 붓의 영향을 받았지만 활자화 되는 과정에서 세부적인 균형과 모양이 변했기 때문에 붓 맛을 담기에 한계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글 활자 중에서 붓에 의한 표현이 살아있는 서체는 옛 글씨를 그대로 복원한 활자들과 궁서체가 대표적이고, 명조체중에서는 최정순선생님의 원도로 제작된 ‘문화부 바탕체’와 ‘SM 신명조체’가 다른 명조체들보다 붓에 특징이 남아 있다.

새로 디자인하는 활자에 ‘붓 맛’을 담기 위해서 붓으로 스케치를 해 보았다. 스케치 과정에서 현재의 명조체나 궁서체가 둔탁한 느낌이 나는 까닭을 생각해 보았다. 서예에는 붓 끝이 드어나는 노봉과 붓 끝이 숨겨져 있는 장봉이 있다.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궁서체는 장봉에 해당하는 것으로 부드럽고 조금은 둔탁한 느낌을 준다. 그에 비해 노봉은 날카로워 보이면서 세련되어 보인다. 문득 한글 활자 중에 노봉으로 표현된 것을 머릿속에 떠올려 봤지만 못 본 것 같다. 분명 옛 글씨를 보면 노봉으로 된 글씨가 있는데

컴퓨터에서 활자디자인 프로그램을 사용한지 20년이 다 되어가다 보니, 종이에 원도를 그리는 것보다 컴퓨터로 바로 디자인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동안 만들어 왔던 대부분의 활자들이 기존 활자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펜이나 붓으로 원도를 그리는 것이 불편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꽃길’을 디자인했을 때도 컴퓨터에서 바로 그렸었다. 그런데 옛 글씨를 보면서 붓에 의한 글자의 형태를 그리려고 하니, 컴퓨터로 바로 그리기 어려워서 오랜만에 손으로 스케치를 했다. 오 호, 즐겁다.

글자의 구성 요소를 추출하기 위해서 뽑았던 대표글자를 그려보았다. 처음에는 옛 글씨를 보고 줄기의 부리와 꺽임, 맺음, 휨 등의 변화를 따라 그려보았고, 그 다음에 그 것들을 낱글자로 만들어 보았다. 스케치를 하면서 가장 고민스러웠던 부분은 옛 글씨의 크기와 현재 사용하는 글자 크기가 달라서, 옛 글씨의 표현을 그대로 가져올 수 없었던 것이었다. 가져오는 과정에서 크기와 모양을 수정해야만 했는데, 그 과정에서 글자의 표정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자를 스케치하면서 주로 신경썼던 부분은 붓 끝이 살아있게 표현하려고 한 것과 가로줄기와 세로줄기의 대비는 크게 하지만 줄기에서 굵기의 변화는 회소화할 생각이었다. 스케치에서는 굵기에 대한 생각이 잘 반영되지 못하여, 컴퓨터로 옮길 때 더 주의해야 할 것같다.

스케치를 하고 난 뒤 생각은 붓 맛을 잘 살리기 위해서 이 글자의 용도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고, 그에 글자의 부리나 맺음 등을 크기나 모양을 정해야 하고, 자족을 디자인할 때 부리와 맺음 등의 크기를 조정해야 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