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한 디자인론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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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정글(paint it black)

 

도전, 전술, D–day(Demobilization Day), 팀, 타깃, 슛 등은 군사용어이다. 이들 살벌한 용어들은 승패가 확연히 갈리는 스포츠 현장으로, 이어서 생사가 확연히 갈리는 경영 현장으로 전파되었다. 과열된 경쟁은 인류의 오랜 살육의 노하우 앞에 고개를 숙이기 마련이다. 디자인도 전쟁의 망극한 성은을 입었다. 하지만 적잖은 시간이 흘렀다. 요즘엔 디자인을 매력적으로 꾸며서 사고 싶게 만드는 행위 정도로 보는 것 같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디자인 팀장’이란 게 참 묘하게 모호한 표현이다. 예~쁘게 꾸미라면서 ‘팀장’까지 하라니 이 무슨… 한마디로 치명적인 매력으로 다 쓸어버리란 말이다.

 

더욱 애매모호한 것은 제아무리 화려한 전적을 남긴들 대장은 될 수 없다는 태생적 한계다. 그 위엔 언제나 갑느님이 계신다. 팀장은 그 분의 옥체를 보존하고 어명을 받들기 위해 오늘도 영광의 상처와 솟아난 핏줄이 교차하는 두 팔뚝을 거룩하게 크로스하며 빗발치는 총알 사이로 무자비한 치명적 매력을 발사한다. 다 쓸어버리겠어~! 두구두구두구.

절체절명의 위기와 골백번 조우하는 아비규환 끝에 드디어 침묵이 찾아 든다. 오른팔엔 선혈이 낭자하다. 하악하악… 팀장은 얼음장 같은 벙커에 기대어 모르핀 대신 품 속의 사진을 꺼낸다. 순간 울컥 치밀어 오르는 눈물… 그리고 냉소. “훗, 내게 아직도 이런 것이 남아있다니!…” 팀장은 하늘을 올려보며 나지막이 읊조린다.

“나는 왜, 무엇을 위해 싸워 왔는가. 왜!!! 무엇을 위해!!!…”

순간 정적을 깨는 한마디.

“팀장님 저희 퇴근해도 되요~?”

 

 

심우진

디자인방법론과 디자인인프라에 관심이 많은 그래픽디자이너이다. 디자인방법론을 콘텐츠로 한 책을 만들고, 가르치기도 한다. 올해 『찾기 쉬운 인디자인 사전』을 출간했고, 현재는 두 번째 책인 『실용 한글 타이포그래피』를 집필중이다. 좋은 디자인에 대한 뚜렷한 가치관을 가진 그는, <지콜론>의 지면을 빌어 디자인에 대한 에세이인 ‘불온한 디자인론’의 연재를 시작했다. 이번이 그 두 번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