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가의 그림책

문학가가 사랑한 그림책도, 그들의 서재에 꽂혀 있을 법한 그림책도 아니다. 그들의 글로 만들어진, 그들의 정신을 담은 5권의 그림책.

에디터 박선주 I 자료협조 문학과지성사, 문학동네, 베틀북, 살림어린이

 

『공주의 생일』

글 오스카 와일드 | 그림 두산 칼라이 | 문학과지성사, 2009년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19세기의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 우리가 『행복한 왕자』로부터 기억하는 비극적인 미감이 여기서도 고스란하다. 이번 기사에서 소개되는 책들은 사실 그림책의 새로운 문법을 구사하는 책들은 아닌 경우가 더러 있다. 오히려 동화책에 가깝고, 삽화에 가깝다. 하지만 ‘아름답기로’소문난 오스카 와일드의 글과 두산 칼라이의 그림을 담아내기에 이 책은 딱 좋아 보인다. 오스카 와일드의 유려하고 호흡이 긴 문장, 두산 칼라이의 장식적이고 디테일한 그림을 제대로 소화하려면 천천히 읽고 찬찬히 보아야 한다.

 

 

『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

글 미하엘 엔데 | 그림 프리드리히 헤헬만 | 베틀북, 2001년

작고 오래된 도시의 극장. 세상의 모든 위대한 희곡과 비곡의 대사를 읊어주던 할머니. ‘어두움’, ‘외로움’, ‘밤앓이’ 같은 이름을 가진, 아무에게도 속하지 않고 아무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그림자들. 미하엘 엔데가 『모모』에서 보여준 특유의 상상력과 환상, 정신세계는 이 짧은 책에서도 유효하다. 글의 양이 다소 많지만, 이야기꾼의 글이라 쉽게 읽히고 종종 프리드리히 헤헬만의 그림이 펼침면 전면에 등장하여 시야를 틔워준다.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재미있다. 역시 책이란 세상의 가난하고 소외된 것들, 중요함에도 잊혀진 것들이 살기에 적절한 장소 중 하나이다.

 

『안녕, 나의별』

글 파블로 네루다 | 그림 엘레나 오드리오 솔라 | 살림어린이, 2010년

밤하늘에서 별을 딴 ‘나’는 가지지 못할 것을 가진 것처럼 서늘한 기운을 느끼고, 셈하는 법도 잊고 밥을 먹는 일도 잊어버릴 만큼 생활이 흔들린다. 돌아가고 싶다는 듯 깜빡이는 별을 결국은 버드나무 숲 아래로 고요히 흐르는 초록빛 강에 놓아준다. 네루다의 글답게 문장은 아름답고 정서는 따뜻하다. 스페인의 그림 작가 엘레나 오드리오 솔라의 그림은 특유의 섬세함과 여백으로 글과 만난다. 별의 비유는 노소를 막론하고, 진지하게 읽는 독자에게 저마다의 울림을 줄 수 있을 것.

 

 

『물의 침묵』

글 주제 사라마구 | 그림 마누엘 에스트라다 | 살림어린이, 2011년

국내에서는 『눈먼 자들의 도시』로 잘 알려진 작가 주제 사라마구와 스페인의 디자이너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마누엘 에스트라다의 만남. 실패와 좌절 후에 찾아오는 희망이라는 진부하기 쉬운 주제를 다루는 노련함이 거장답다. “하지만 물은 아주 오랫동안 침묵했습니다. 물의 침묵은 세상 어떤 침묵보다 진한 침묵이란 걸 알았습니다.” ‘물의 침묵’을 설명하기 위해 더는 사족을 보태면 안될 것 같다.

 

 

 

* 기사의 전문은 <지콜론> 2월호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