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한 디자인론 ✤ 디자인 꺾기

심우진

 

모니터를 보며 마우스로 탈칵 탈칵 작업하는 북디자이너가 듣게 되는 말로는 대표적으로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 아니 꼭 이런 거 지켜야 되? 앞에서 20포인트로 썼다고, 여기서도 똑같이 하란 법이 있냐고…

▶ 탈칵, 탈칵…

▶ 여긴 글이 많으니까 17포인트로 가고, 다음 것은 18포인트로 갑시다.

▶ 탈칵탈칵, 탈칵탈칵…

▶ 솔직히 그거 바뀐다고 아무도 모르잖아. 대세에 지장이 없는데 왜들 그리 작은 거에 집착해?

▶ 타카탈칵타카탈칵타카탈칵타카탈칵…

▶ 어? 잠깐잠깐잠깐! 멈춰봐!

▶ (-_-;)…

▶ 어! 여기 여기 여기 여기! 맞춤법 틀렸네! 아 진짜!

디자인에서는 포맷이 문법이요, 맞춤법입니다. 그걸 어기면, 아나운서가 팔도 사투리로 9시 뉴스를 하는 격이 되죠. “아홉 시가 되아 께 인자 시작허요” 같은 오프닝 멘트. 심할 경우에는 어처구니 없는 비문이 되기도 해요. “오늘의 저기압은유 날씨의 영향으루 춥것슈.” 뭐 그래도 대~충 알아듣긴 하죠. 매체를 다루는 이는 마땅히 지켜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전문 용어로 저널리즘이라고도 하지요. 물론 당신도 같이 지켜주셔야 합니다. 한 배를 탔으니까요. 언어는 약속입니다. 그걸 꺾으면, 독자는 공황 상태가 됩니다람쥐.

 

 

심우진 디자인방법론과 디자인인프라에 관심이 많은 그래픽디자이너이다. 디자인방법론을 콘텐츠로 한 책을 만들고, 가르치기도 한다. 올해 『찾기 쉬운 인디자인 사전』을 출간했고, 현재는 두 번째 책인 『실용 한글 타이포그래피』를 집필 중이다. 좋은 디자인에 대한 뚜렷한 가치관을 가진 그는, <지콜론>의 지면을 빌어 디자인에 대한 에세이인 ‘불온한 디자인론’의 연재를 시작했다. 이번이 그 두 번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