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초상

1950년대라는 한 시기를 살고 갔고, 그 이름과 기억은 여전히 한 시대를 살고 있는 여성, 마릴린 먼로를 기념하는 작은 전시가 열리고 있다.

에디터. 박선주

자료제공. 신세계갤러리

 

“내가 대중과 세상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것은 내가 재능이 있어서도 아니고 아름다워서도 아니에요. 내가 어느 것에도, 어느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이름을 남긴 문화와 예술계의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누군가는 작품으로 각인되어 있는가 하면 누군가는 사람 자체로 기억된다. 1950년대 할리우드와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 그리고 특정한 문맥과 맥락을 넘어 하나의 상징으로 남은 마릴린 먼로가 세상을 떠난지 50년이다. 6월 5일부터 7일 16일까지, <Marilyn, Forever>라는 이름으로 신계계갤러리에서 작은 회고전이 열린다. 미완성작으로 남은 <사랑할 때 버려야 할 것들> 촬영장에서 찍은 로렌스 쉴러의 <Marilyn 12>, 사망 6주 전에 촬영한 버트 스턴의 사진 등을 비롯하여 잡지, 음반, 영화 등이 전시된다.

노마 진(Norma Jeane)은 1926년 사생아로 태어났다. 어머니가 정신장애가 있었기 때문에 고아원과 위탁가정을 전전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16세에 제임스 도허티와 결혼했고, 1946년 모델 일을 시작한 즈음 이혼했다. 이름을 마릴린 먼로로 바꾸고 할리우드 – 그녀는 할리우드에 대해 키스 한 번에 1000달러를 주고 영혼에는 50센트를 주는 곳이라 평했다 - 로 향해 20세기 폭스사와 첫 계약을 맺었고, 1947년 영화 <스쿠다 후! 스쿠다 헤이!>에 출연하면서 본격적인 영화배우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에는 우리가 아는 것처럼 배우로서, 섹스 심벌로서 스타의 자리에 올랐고, 최악의 혹평과 최고의 인기를 한몸에 받았다. 세기의 관심 속에 이루어진 야구선수 조 디마지오와의 결혼과 이혼 이후, 1956년 유대인 극작가 아서 밀러와 결혼했다. 그들은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으나 5년 후에 헤어졌다. 파경과 유산 등으로 먼로는 약물중독과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리고 영화 <사랑할 때 버려할 것들>을 촬영하던 중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성공하고 난 후에도 나는 여전히 겁에 질린 노마 진의 시선을 느껴요. 노마 진은 계속 ‘나는 한 번도 삶을 누리지 못했어. 나는 한 번도 사랑받지 못했어’라고 말해서 나를 혼란스럽게 해요. 결국 그 말을 하는 건 나 자신이죠.” 작은 규모임에도 인물의 존재감이 빛나는 이 전시는 전혀 비극적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대중매체 속 총천연색의 그녀가 서럽게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지나친 감상주의일까. 한 사람이 삶에서 진실로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동시에, 사진 속에 기록된 그녀는 아름답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