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좋았다가 싫었다가
오래, 꾸준히, 건강하게 일하기 위하여


글. 배은지
정리. 김아영








꼰대 꿈나무의 세계로 발을 들이는 기분


회사 내부 강의에서 대한민국 직장 생활의 비극은 직급이 올라갈수록 ‘보고 업무가 늘어나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부하 직원이 한 일을 취합하여 윗사람에게 보고 하는 것’이 중간 관리자의 주 업무인데, 회사라는 테두리 밖에서는 전혀 쓸데가 없는 일이라는 것.


이번 주에도 회사에서 영혼이 털리는 일이 있었는데, 전사 워크숍을 앞두고 밀려오는 문서 작업 때문이었다.

우선 다른 일을 빨리 처리해야 해서 후배에게 초안을 만들어보라고 설명하는데, 내가 말하면서도 뭔 소리지 싶었다.

시간이 없어 “일단 써봐”라고 했는데 아, 내가 이런 말을 하다니. 꼰대 꿈나무의 세계로 발을 들이는 기분이었다.



금요일 오후 5시가 다 되어 후배가 써놓은 PPT를 열고 수정하려는데 내 뒤통수로, 내가 바쁜 걸 아니까 재촉하지 못 하는 팀장님의 얼굴과

괜히 내 눈치를 보고 있는 죄 없는 후배의 얼굴이 안 봐도 보였다. 순간 유독 정신 없던 일주일의 누적된 울분이 폭발하며 정말 눈물이 날것 같은 심정이었다.


➊ 지금 이 PPT를 작성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팀장
님이 발표 자료를 파트별로 작성해 달라고 했기 때문
이다.
➋ 팀장님은 왜 이 자료가 필요한가? 상무님 앞에서
발표해야 하기 때문이다.
➌ 상무님은 왜 발표를 시켰는가? 상무님도 사장님
앞에서 발표해야 하기 때문이다.
➍ 그럼 최종적으로 사장님은 왜 발표를 시켰는가?


임원들이 업무 파악을 잘하고 있는지 판단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사장님과 상무님 두 분이 해결하면 될 일 아닌가? 먹이 사슬도 아니고 질문의 사슬 그 끝에서 결국 나는 ‘안 해도 될 일’을 하고 있다는 자괴감에 빠졌고,

갑자기 분노에 차서 팀장님에게 이 자료를 대체 왜 만들어야 하느냐고 질문하고야 말았다.


안 해도 되는 일을 하니까 월급을 받는 것이 직장 생활이라면 그럭저럭 이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그

런데 회사를 오래 다니고도 이렇게 인생의 오춘기처럼 방황하는 나에 대해 스스로 놀라기도 하고 돌이켜 보며 깨달은 것은,

나는 유행처럼 ‘퇴사’하고 일을 그만두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일을 잘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영혼 없이 일하고 싶었는데 사실은 영혼만은 내려놓고 싶지 않았다. 근력 운동은 질색이지만,

마음의 근육은 어떻게 해서든 키우고 싶었다. 근성과 의지를 가지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다.


※ 위 글은 『회사가 좋았다가 싫었다가』에서 발췌하였습니다. 글 전문은 책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저자 소개

배은지
10년 차 직장인. 기업에서 커뮤니케이션, 브랜딩, 기업문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직장 생활은 딱 10년만 하고 싶었는데, 이제 건강하게 오래 일하는 삶으로 방향 전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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