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YPENAME

 

폴(Paul), 오스월드(Oswald), 지암바티스타(Giambattista)... 사진 속 무지 티셔츠에 적힌 이름들의 공통점은? 정답은, 디자인 사에 혁혁한 공을 세운 서체 디자이너들의 이름이다. 그들이 디자인한 서체로 이 거룩한 이름을 티셔츠에 직접 적어놓았으니 그야말로 문제 안에 답이 있었던 셈. 답을 몰라 먼 산을 바라봤다면, 반성할 일이다. 이 티셔츠 프로젝트의 이름은 글자 그대로 타이프네임(Typename)이다. 그래픽디자이너 박경식이 서체 디자이너에게 바치는 오마주 프로젝트로서 다음과 같은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서체의 이름 못지않게 서체의 시대적 배경, 콘셉트, 무엇보다 누가 디자인 했느냐가 중요하다. 최근 타이포 브랜딩의 이름 아래 출시된 대부분의 ‘전용서체’는 잘 다듬어진 한글에서 절실히 필요로 하는 본문용 서체가 아니라, 홍보나 광고의 용도로 쓰이는 장식적인 ‘제목용’ 서체들이다. 이는 서체가 지녀야 할 시각 디자인적인 특징보다 서체 디자인이 지니는 고유영역을 브랜드가 확보하여 마케팅전략에 사용하고자 함에 있다.” 서체의 본질을 되짚어보자는 취지는 일단 박수 받아 마땅하지만, 입었을 때 효용을 다해야 비로소 디자인인 법. 다행히 지난 12월에 발표한 두 번째 시리즈부터 패션브랜드 ‘슬립워커(SLWK)’가 디자인을 담당해 담백하고 튼튼한 티셔츠를 선보이고 있다. 특히 몸통에 납작하다 싶게 붙는 ‘핏’이 일품이다. 수축과 비틀림 방지가공이 된 20수 면 원단, 어깨와 목선의 늘어짐 방지를 위한 체인스티치, 구형기계로 직조된 타이포네임 특유의 메인라벨, 그리고 메인라벨 뒷면에 손으로 기재한 각각의 시리얼 넘버 등에서 슬립워커(SLWK)의 과시하지 않는 디자인을 확인할 수 있다. 티셔츠 가격은 32,000원, 검정과 흰색 2종류다. 각각 50장이 한정 판매되는데, 박경식은 이렇게 덧붙인다. “희소성을 빙자한 마케팅 전략이 아니라, 워낙 각광 받아 마땅한 서체 디자이너가 많기에 재생산이나 재고로 물품을 남길 여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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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상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