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날씨는 없다. 나쁜 옷차림만 있을 뿐
스웨덴 날씨는 극과 극이었다. 여름에는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른 하늘과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볕,
여름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상쾌한 공기와 밤 9시가 넘어도 적당히 밝은 바깥 풍경까지 즐기고 있자면
‘지상 최고의 낙원이 여기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반면 7~8월, 짧은 여름이 지나가면 스웨덴 날씨는 돌변했다.
날씨가 점점 나빠지기 시작해서 가을이 시작되는 10월부터 4월 말까지는 우중충한 풍경이 계속되었다.
우리가 살던 룬드는 ‘스웨덴’ 하면 막연히 떠오르는 눈과 얼음, 추운 날씨와는 거리가 좀 있었다.
근처에 있는 바다의 영향 때문에 겨울에도 비교적 포근했다. 오히려 한국의 겨울이 추워지고 있다는 소식에
스웨덴과 한국이 서로 바뀐 건 아닐까 생각할 정도였다. 그런데 문제는 기온만 한국보다 높았지 매일 같이
비가 내리고 구름이 잔뜩 낀다는 것이었다. 종일 어두컴컴한 하늘 때문에 전에는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답답함을 느꼈다. 무엇보다 해를 볼 수 없다는 게 가장 힘들었다. 구름 때문에 해 구경을 하기도 힘들뿐더러
고위도 지역이라 낮의 길이도 짧았다. 12월의 룬드는 아침 9시가 넘어서야 창밖이 희끄무레하게 조금 밝아왔고
낮 3시쯤 되면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낮에는 해가 비치지 않고 밤은 정말 긴 날들, 이런 날씨가 길게는
6개월 동안 계속되었다. 이민자나 외국인 유학생들은 이런 날씨가 익숙하지 않아서 스웨덴 사람들에 비해
더 무기력증을 호소하거나 우울함을 느낀다고 했다. 나도 여태껏 살면서 날씨에는 둔감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스웨덴의 겨울을 경험하며 맑은 날씨와 따뜻한 태양의 소중함을 절절히 느꼈다.
이런 악명 높은 겨울 날씨 때문인지 외국 사람이든 스웨덴 사람이든 할 것 없이 서로 모이기만 하면
오늘의 날씨가 대화 주제가 되곤 했다. ‘오늘도 비 맞고 자전거 탔어’라거나 ‘오늘 바람이 엄청 부는데?’,
‘세상에 오늘 해가 떴어! 얼마만이야?’처럼 말이다. 한번은 스웨덴어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여러분이 스웨덴에 살면서
가장 안 좋았던 점은 무엇인가요?”하고 물었는데 외국인 친구들은 주저 없이 날씨를 첫 번째로 꼽았다.
그러면서 자신이 살던 곳의 날씨가 얼마나 좋았는지, 태양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등을 이야기하며
자기 나라 자랑을 늘어놓았다. 스웨덴 날씨에 대한 불평에 선생님은 그래도 스웨덴 여름 날씨가 환상적이라며
반박할 법도 했지만 차분히 듣고 나서 “스웨덴 날씨가 그렇죠 뭐”라고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스웨덴에서 두 번의 겨울을 보내며 점점 커지는 귀찮음을 이겨내야 했다. 어딜 나가려고 해도 비가 와서
심란하고 외출하려고 준비를 하다가도 금세 컴컴해지는 밖을 바라보고 “에이, 너무 늦었네. 그냥 집에 있자”고 한 게
수십 번이었다. 우리 부부는 점점 ‘집돌이, 집순이’가 되어갔다. 처음 스웨덴에 왔던 해 여름엔 매일 수영장에 가고
조깅도 하며 시내에 뭐가 있는지, 쇼핑몰에는 어떤 물건들이 새로 들어왔는지 열심히 돌아다녔는데 겨울이 되자
운동도 쇼핑도 시내 구경도 시들해졌다. 날씨가 정말 결정적이었다. 나는 대부분 스웨덴 사람들도 날씨가 안 좋으면
우리처럼 집에 머물며 지내는 줄 알았는데 그들은 어릴 때부터 이런 날씨에 익숙해서인지
날씨에 크게 구애받지 않으며 씩씩하게 생활하고 있었다. 비가 매일 와도 불평하지 않고
우비와 장화를 갖춰 입고 바깥을 잘만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궂은 날씨에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스웨덴 사람들을 많이 봤지만 그중에서도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어느 날,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비를 맞으면서 조깅을 하고 있는 동네 사람을 봤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달리는 그를 보며 비를 맞으면서도 운동을 하는 열정에 적잖이 놀랐다.
또 해가 짧아서 한밤중처럼 느껴지는 오후 5시, 우리는 깊은 밤이 되었다고 착각하면서 외출을 포기하곤 했지만
스웨덴 사람들은 해가 떠 있든 밤이 어두워졌든 크게 개의치 않고 취미 활동을 했다.
퇴근하고 수영장에 가거나 댄스 교실에서 춤을 추며 활기차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그들의 모습.
땀을 흘리면서 날씨가 주는 스트레스를 날리는지 날씨 따윈 예전부터 무감각해져서 상관없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활동적인 모습을 보니 나도 덩달아 에너지가 생기는 것 같았다. 학교나 유치원에서도 겨울이라고 해서
실내 수업만 하지 않고 아이들이 스키복 같은 방한복을 챙겨 입고 야외 놀이를 하는 걸 보면서 정말 적극적이구나 싶었다.
스웨덴 사람들은 궂은 날씨를 불평하기보다는 그냥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살았다.
갑작스러운 비에도 발을 동동거리지 않고 쿨하게 맞는다거나 해가 빨리 져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뿐이었다.
그들은 궂은 날씨를 좋다고 애써 거짓으로 긍정하진 않았다. 다만 그들은 받아들이고 적응하며
또 이런 환경을 극복하려는 적극적인 태도로 살아가고 있다. 궂은 날씨에 압도당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더 우울해질지 모른다. 그들의 이런 적극성은 열악한 기후조건을 가진 땅 위에서
오랜 시간 동안 살며 체득한 삶의 지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